[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무늬
무늬 잃어 버린 것들 찿아 나선 저녁 잃어 버릴 수 없는 것들을 만나고 버려질 수 없는 것들을 만났지요 엉켜진 덤불 아래서 파도가 머물고 간 모래톱에서 실핏줄 같은 기억이 엇갈려 흐르고 있어요 서 있는 시간 내내 해는 기울고 찿을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것들은 사람의 손길, 눈길보다 아득했지요 잃어 버린 것들을 찿아 나선 저녁 가던 길 돌아와 자세히 보면 아! 알고 계시나요 당신의 시간에 기대어 살고 있었다는 걸 잃어 버린 것들과 버려진 것들의 심장은 가리워진 길처럼 숨쉬고 있어요 그 길을 수도 없이 지나치면서 지는 꽃잎에 눈물만 훔치던 사내 하루가 저무는 저녁 내내 하늘은 붉은 노을로 번지고 잃어 버린 것들을 찿아 나선 저녁 무언의 대답을 따라 저무는 하늘엔 당신이 그려 놓은 인생길 같은 무늬 길게 펼쳐진 호숫가를 걷고 있어요. 바다인지 호수인지 끝이 보이지 않아요. 파도가 밀어놓은 덤불과 나뭇가지가 널려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해변은 깨끗하답니다. 파도에 쓸려 동그랗고 납작한 조약돌이 파도에 쓸릴 때마다 햇살에 반짝거려요. 갈매기 발자국이 가볍게 찍힌 모래 위 세갈래 무늬는 어머니의 모시 브라우스에 연하게 새겨진 문향과 많이 닮아 있어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무늬였어요. 한참을 걸었나 봐요. 뒤 돌아보니 저 멀리 걸었던 길들이 보이고 기쁨도 아픔도 보여요. 지나간 날들의 추억이 파도에 밀려왔다 마구 흩어져 버려요. 미시간 호숫가 인적 없는 모래톱이 마치 인생 같았어요. 인생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모래 알갱이 들의 유희 같은 미미한 존재인줄은 알았지만 이곳은 너무 넓어요. 나는 사라지고 말아요. 마치 세상을 처음 접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이에요. 저기 좀 보아요. 옥색의 바다 끝이 거의 동색의 하늘시작과 붙어 있어요. 조금씩 붉은빛이 도는 걸 보니 시간이 꽤나 지난 것 같아요. 오늘은 당신이 만들어 놓은 무늬 속에 있고 싶어요. 패여진 곳과 도툼해진 선들이 내속에 퍼져있는 실핏줄 같아요. 살아 있었네요. 체내의 불순물이 핏줄을 통해 사라지듯이 밀려오고 빠져나가는 호수는 깊은 호흡의 통로가 되요. 이제 인적이 끊긴 호수는 무늬로 남아야 해요. 얼굴을 돌린 누구에게로부터라도 기억이 살아날 때까지 호흡을 멈추고 덮히고 숨겨져야 해요. 당신이 날 기억해 낼 때까지 천년의 출렁거림으로 다가왔다 물러서야 해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무늬 세갈래 무늬 미시간 호숫가 덤불과 나뭇가지